(..1부에서 이어집니다)
<환상특급 극장판>이 논쟁에 휩쓸리며 실패했던 반면 전년도에 먼저 개봉한 <크립쇼>는 당시 낯설었던 컨셉의 위기를 극복하며 성공한 사례다. 이 영화는 호러계의 4대 천왕이 뭉쳐 만든 초특급 프로젝트였다. 먼저 그 첫번째 천왕이자 영화의 원작은 40~50년대 유행했던 공포만화 시리즈 <Tales from the Crypy>였다. 2차 세계대전 전후 슈퍼히어로 코믹스가 인기를 끌던 시기, 변두리 만화사 EC 코믹스(Entertainment Comics)는 10대와 성인층을 겨냥한 새로운 만화콘텐츠로 공포, 범죄와 반전이 담긴 괴담 만화 시리즈를 펴냈다. 시리즈는 발간되자마자 그 독특한 컨셉과 과격한 묘사에 타겟층인 10대로부터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1948년 청소년 모방범죄가 발생하자, 미 정부는 심리학자들까지 동원하며 직접 만화책 검열에 나섰고 성난 부모들은 ‘만화책 소각운동’을 벌였다. 이 위기에서도 다행히 만화광들의 대표 수집품으로 재주목받으면서 고전으로 부활해 역사에 남게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 이에 열광하던 나머지 호러 3대 천왕들은 이에 오마쥬를 바치는 <크립쇼>를 기획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다름아닌 각본을 맡은 명 작가 ‘스티븐 킹’, 연출을 맡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의 ‘조지 A. 로메로’ 감독, 그리고 <시체들의 새벽>(1978)의 특수분장사 ‘톰 사비니’였다. 첫 번째 에피소드 ‘아버지의 날(Father’s Day)’은 무덤에서 되살아 온 탐욕스런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다. 딸을 부려먹고 그녀의 애인을 살해하기까지 한 아버지는 ‘아버지의 날’ 명절에 분노한 딸에게 살해당한다, 그러나 같은 아버지의 날 그는 좀비가 되어 무덤에서 기어 나와 다시 탐욕스레 아버지의 날 케이크를 달라며 살육을 벌인다. 영화의 정체성을 시작부터 화끈하게 보여주는 괜찮은 에피소드다. 두 번째 ‘조디 베릴의 외로운 죽음(The Lonesome Death of Jordy Verrill)’는 유성을 만진 뒤 온몸에 이끼가 자라나는 어느 농장주의 비극적인 이야기다. 괴물이나 귀신이 등장하지 않지만, 온몸이 이끼로 뒤덮여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바디-호러물처럼 보기 괴롭다. 여기서 불쌍하면서도 멍청한 농장주는 작가 스티븐 킹이 직접 연기했는데, 유명 소설들을 써낸 지적인 작가로서 이미지와 정반대되는 능청스런 모습을 천연덕스레 보이는 연기실력을 자랑한다.
세 번째 ‘밀물이 밀려든다(Something to Tide You Over)’에서도 의외의 명연기가 기다린다. 코미디 대배우 ‘레슬리 닐슨’이 바람 핀 아내와 그의 애인을 바닷가에 목까지 파묻고 밀물로 익사해 가는 모습을 실시간 TV로 보며 즐기는 싸이코를 연기한다. <총알 탄 사나이>부터 <무서운 영화> 시리즈에서의 코믹한 연기는 온데간데 없고 피눈물도 없는 악한을 살 떨리게 연기한 닐슨을 보면 그도 역시 ‘연기파’임을 느낄 수 있다. 러닝타임이 가장 긴 네 번째 에피소드 '상자(The Crate)’는 대학연구실에 들여진 수수께끼의 상자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사라지는 소동을 담았다. 단순하고 전형적인 스토리지만 인간의 어두운 면모를 파헤치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쉽게 눈 떼지 못 하게 이끈다. 동시에 사비니가 만든 만화적인 잔혹 장면들도 볼거리(?)를 제공한다. 마지막 에피소드 ‘그들이 너의 위로 기어오른다(They're Creeping Up On You)’는 결벽증으로 무균실 안에서만 지내는 구두쇠 노인의 최후를 그렸다.
이번 이야기는 내외적으로 가장 특별하게 다가오는데, 주인공은 단순히 벌레를 혐오할 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위기를 이민자들 탓으로 돌리고 흑인 집사에게 막말을 퍼부울 때 직접 대화하지 않고 인터폰으로만 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점에서 그의 심각한 결벽증을 곧 인종 혐오와 연결지어 본다면 더 흥미롭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끝내 차별만큼이나 바퀴벌레를 죽이는 것까지 즐기던 그는 분노한 바퀴벌레들에게 덮히는 끔찍한 최후를 맞는다. 당연히 CG가 없던 시절인 만큼 영화에서 배우를 덮치고 파먹는 수 천마리 바퀴벌레들은 모두 실제 살아있는 바퀴벌레들이다.(물론 뒤덮이고 파먹히는 배우도 고기로 속을 채운 인형이다.) 다채로운 에피소드들과 함께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기발한 분할 편집과 원색으로 과장된 조명효과다. 이는 원작 만화책의 효과를 그대로 흉내낸 것으로 그답게 진짜 만화를 읽는 듯한 시각적 재미를 제공한다.
<환상특급 극장판>과 <크립쇼> 두 영화는 똑같이 공포 장르 중심의 옴니버스 영화라는 공통점에서부터 이 호러 옴니버스물의 기틀을 마련해준 작품들이다. 물론 이전에도 <괴담>(1964), <블랙 사바스>(1963)가 있었지만, 이 둘은 헐리우드 방식으로 호러 옴니버스의 대중화를 실험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처음 시도한 만큼 바로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그나마 <크립쇼>가 원작 만화부터 감독, 작가의 명성에 힘입어 호러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작은 흥행을 거두긴 했지만, <환상특급 극장판>은 충격적인 사고에 대한 논란과 비난을 받으며 참패를 겪고 말았다. 이 두 영화가 당시 큰 반향을 일으키는데 실패함에 따라 옴니버스물은 여전히 그 낯선 컨셉으로서 한동안 남게 되었다. 그러다 90~2000년대가 되어서야 TV 단막극 장르의 재유행과 함께 <펄프 픽션>(1994), <쓰리>(2002), <무서운 이야기>(2012), <VHS: 죽음을 보는 비디오>(2012), <죽음의 ABC>(2012), <XX>(2017) 등을 통해서야 안착되었다. 그리고 자연히 그들의 기원격으로서 두 영화는 재주목을 받고 장르팬들을 통해 컬트화되었다.
특히 <크립쇼>의 경우 흥행 제작자 '조엘 실버'의 이목을 끌었고 같은 원작을 기반으로 89년 TV 단막극 시리즈 [Tales from the Crypt](1989~96)가 제작되게 되었다. 유명 제작자가 기획한 만큼 헐리우드 스타들, 감독군까지 참여하였고, 당시 개편된 케이블 채널 'HBO'를 통해 과격한 잔혹 묘사와 선정성을 그대로 유지해줌으로서 원작의 스타일을 고수해 보였다. 시리즈는 방영되자마자 대히트를 치며 7년 동안 장기 방영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납골당 미스터리](혹은 [크리프트 스토리])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어졌다. 그 긴 인기가 있었으니 극장판 기획도 이뤄졌다. 단 옴니버스가 아닌 단독 장편 스토리로 기획되었고, 가장 짜릿한 이야기의 시나리오가 필요했다. 여러 후보군 끝에 마침내 <데몬 나이트>(1995)와 <뱀파이어와의 정사>(1996) 두 편이 만들어졌으나, 공교롭게도 두 영화 모두 TV에서의 재미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과 함께 참패를 겪는다.(그래도 이 중 <데몬 나이트>는 진짜 추천한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이 때의 후보 시나리오들 중에 지금 클래식이 된 <프라이트너>(1996)와 <황혼에서 새벽까지>(1996)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럼 <환상특급 극장판>은 이후는 어떻게 되었을까? 홀로 긴 법정 공방 마친 후 존 랜디스는 <에디 머피의 구혼작전>(1988), <비버리 힐즈 캅3>(1994)까지 만든 뒤 더 이상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헐리우드를 떠나 독립 및 영국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반면 스필버그와 조우하게 된 저예산 영화 출신 조 단테는 함께 고전이 되는 <그렘린>(1984), <이너스페이스>(1987), <스몰 솔져>(1998) 등을 만들며 헐리우드에 안착했다. 똑같이 호주에서 헐리우드에 입성한 조지 밀러도 <이스트윅의 마녀들>(1987), <로렌조 오일>(1992)를 만드는 한편 제작자가 되어 <꼬마돼지 베이브> 시리즈(1995~98)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당연히 헐리우드의 빵빵한 지원으로 돌아온 <매드 맥스 4:분노의 도로>(2015)와 <퓨리오사: 매드 맥스 사가>(2024)도 그 연장선상이다. 헐리우드를 대표하는 거장이 된 스필버그는 말할 것도 없다.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였지만, 명작 TV 시리즈의 명성을 되살리고자 블록버스터화 시킨 <환상특급 극장판>은 그 의도만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게 장르 매니아들의 의견이다.
그리고 그 영향력에 힘입어 85년(TV), 2019년(넷플릭스)에 이 시리즈가 다시 리메이크되어졌고, 그에 직접적으로 오마쥬를 바치는 [어메이징 스토리](1985~86), [제3의 눈](1995~2002), [기묘한 이야기](2016~22)와 [블랙 미러](2011~23)가 등장했다. 심지어 19년도 리메이크 판을 제작한 ‘조던 필’ 감독 또한 <겟 아웃>(2017)과 <어스>(2019), <놉>(2022)에서의 상상력을 고전 <환상특급> 시리즈에서 얻었다는 이야긴 유명하다. 그러니 원작 [환상특급] TV 시리즈부터 <환상특급 극장판>의 레거시는 지금까지 계속 뿌리내려져 오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는 2019년 Shudder 시리즈로 부활한 <크립쇼>와 역시 리메이크 소식이 들려오는 후계자 [Tales from the Crypt]도 마찬가지이다. 짜릿한 공포와 유머가 그리울 때, 이 각양각색 매운 맛들을 담은 이 두 편의 영화, 9편의 옴니버스 단편들을 추천하는 바이다. 한 가격으로 즐기는 다수의 이 ‘쥑이는 이야기’ 패키지 2편을 어떻게 뿌리칠 수 있겠는가?
(여담 : (본문 중에 언급을 깜빡하였다;)<크립쇼>는 <환상특급 극장판>과 달리 이후 2편의 시리즈가 개봉되었다. 그 중 87년 제작된 2편은 전작과 달리 혹평을 받았지만 킹, 로메로, 사비니가 그대로 참여한 만큼 정통적인 후속편이 되었고, 20여년 만에 등장한 3편은 위 3인이 빠지고 저예산 인디 제작사에서 제작한 탓인지 아이디어부터 연출이 허접하다; 그러니 3편은 비추하는 바이다; 허접 영화를 즐기는 이들이라면 모를까;^^;)
사진 출처 :
IMDB( https://www.imdb.com/?ref_=nv_home )
SlideShare: Tales from the Crypt( https://www.slideshare.net/search?searchfrom=header&q=tales+from+the+crypt )
‘A History of Comics and Early Literacy-American anti-comics sentiment’ from 'COMICS & LITERACY'( https://comicsliteracy.weebly.com/history.html )
How English students are discovering classics through comics(by Chandra Johnson) from “Deseret News”( https://www.deseret.com/2017/4/9/20609879/how-english-students-are-discovering-classics-through-comics/ )
'Stephen King, Tom Savini & George Romero on the set of Creepshow'(04.12.2017) from Dangerous Universe( http://dangerousuniverse.com/du/2017/stephen-king-tom-savini-george-romero-set-creepshow/ )
Blog 'JET FUELREVIEW BLOG'-‘‘HBO’s “Tales from the Crypt” Retrospective: An Introduction’( https://lewislitjournal.wordpress.com/2015/05/30/a-look-back-at-hbos-tales-from-the-crypt-series-an-introduction/ )
'Here’s How To Watch Jordan Peele’s ‘Twilight Zone’ Reboot In Australia'(04.04.2019) by Joseph Earp from JUNKEE ( https://junkee.com/jordan-peele-twilight-zone-australia/200384 )
영화 <Creepshow>(ⒸCreepshow Films Inc. & Laurel Entertainment Inc. & Warner Bros, 1982) 영상 캡쳐
TV 시리즈 <Tales From the Crypt> Season.2 EP.14(ⒸHBO, 1990) 영상 캡쳐
자료 출처 :
‘10 Things You Didnt Know About Creepshow’ from Youtube Channel 'Minty Comedic Arts'( https://www.youtube.com/watch?v=5B4MmGouOr0 )
‘10 Things You Didnt Know About TalesFromTheCrypt’ from Youtube Channel 'Minty Comedic Arts'( https://www.youtube.com/watch?v=Ml6An_vEWGA )
‘Brandon's Cult Movie Reviews: CREEPSHOW’ from Youtube Channel 'Brandon Tenold'( https://www.youtube.com/watch?v=FQwd9aGjsSQ&t=121s )
‘A History of Comics and Early Literacy-American anti-comics sentiment’ from 'COMICS & LITERACY'( https://comicsliteracy.weebly.com/history.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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